A Post Entitled 동심원 이론: 마샬 샐린스(Marshall Sahlins)
Marshall Sahlins, Stone Age Economics, Chicago, ALdine, 1972., Marshall Sahlins, Tribesmen, New Jersey, Englewoods Cliffs, Prentice Hall, 1968.
(샬린스에 따르면) 사회적 공간은 일련의 동심원과 같은데, 한 가운데에는 집과 가족이 자리 잡고 있다. 그 다음에는 차례로 친족, 마을, 그리고 부족이라는 동심원이 있으며 맨 마지막에는 부족들 간의 공간인 바깥 공간이 자리 잡고 있다. 동심원의 중심에서 일어나는 교환은 샬린스가 ‘전적인 상호성’이라 부르고 있는 전면적인 연대성, 즉 되돌려 받을 생각 없는 무조건적인 도움이 지배하고 있다.
한 친척 내의 교환도 대부분 이와 비슷하다. 마을과 부족에서의 교환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상호성, 정확히 말해서 ‘평등한 상호성’이 지배하고 있다. 여기서 하나를 주는 것은 그와 똑같은 것을 하나 되돌려 받는 것을 요구하고 있다. 마을에서 부족으로 그 거리가 멀어짐에 따라 되돌려 받는 데 걸리는 시간과 양상은 더 엄격하게 명시된다. 마을이나 부족의 교환에서 일어나는 약속불이행은 무엇이든 치명적인 과오가 된다. 이런 약속불이행은 가족이나 친척 사이의 교환에서는 용인되고 있지만, 그 바깥 영역에서는 더 이상 신뢰를 얻지 못하는 것이 되고 만다.
부족 바깥에서는 아무 대가도 지불하지 않고 어떤 것을 획득하려는, 그러고도 벌도 받지 않는 여러 시도들, 즉 샬린스가 ‘부정적 상호성’이라 부르고 있는 것이 지배하고 있다. 상대방의 피해 위에서 자신의 이득을 최대한으로 얻겠다는 목표 하에서 이 ‘부정적 상호성’은 단순한 거래로부터 시작해서 강탈 및 폭력, 약탈에 이르는 다양한 모습으로 행해지고 있다. 의미심장한 것은, 우리 기준에 따르면 가장 경제적인 교환들, 즉 각자가 자신의 이익을 증가시키려는 교환들은 언제나 공동체 외부에서만 일어나고 있었다는 점이다. 더 의미심장한 것은, 원시사회에서는 이런 교환들을 폭력과 같은 범주에 넣고 있었다는 것이다.
_Paul Dumouchel et J-P.Dupuy, L’enfer des choses-René Girard et la logique de l’économie, Seuil, 1979. p.158. _
샬린스의 생각은, 주체로부터 가까운 동심원 안에서는 아무런 대가도 기대하지 않고 주고받는 ‘전적인 상호성’이 지배하고 있고, 비교적 가까운 사이에서는 똑 같은 대가를 기대하는 등가성을 중시하는 ‘평등한 상호성’이 지배하고 있지만, 관계가 먼 집단 사이에서는 아무런 대가도 지불하지 않으면서 획득하려는 ‘부정적인 상호성’이 지배하고 있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더 중요한 것으로 보이는 사실은, 오늘날 우리가 행하고 있는 경제적인 교환을 원시사회에서는 폭력과 약탈과 같은 ‘부정적인 상호성’의 범주에 넣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일반경제를 향하여: 르네 지라르를 통한 경제논리 비판4, 김진식, 한국프랑스학논집 제 54 집 (2006) pp. 319~336